테마스토리

사람들은 누군가를 알아갈 때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만일 이 말에 동의한다면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라는 질문을 묻거나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질문을 들을 때면 항상 ‘바다’가 좋다는 답을 했다. 산은 나에게 힘든 곳, 고리타분한 곳이라는 편견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기사를 작성하기 전 무등산에 오를 기회가 생겼고, 다녀온 뒤 산에 대한 편견은 좋은 기억으로 덮이게 되었다. 지금부터 이 기사를 읽는 모든 사람들이 등산 경로, 사진 속 경치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산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며 글에 집중한다면 아마 필자처럼 산에 대한 좋은 기억을 되살려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등산은 2013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찾아갈 때는 첨단 9번, 수완 12번/49번, 운림 35번/50번/51번/54번, 봉선 76번을 타고 증심사 입구에서 내리면 오른쪽 사진의 장소가 나오는데, 여기가 무등산 국립공원 여행의 시작점이다. 정상까지 다녀오기에는 약 6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생수와 달달한 간식거리는 필수 준비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등산 경로 중에는 정비되지 않은 난코스도 있으므로 등산 전문가 같은 치장까지는 아니더라도 편한 복장으로 가는 것이 한결 가벼운 여정이 되게끔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오전 11시 25분, 증심교 - 중머리재(617m) - 장불재(919m) - 입석대(1017m) - 서석대(1100m) 순서로 오르게 되었다. 힘들 때 체력을 보충해 줄 초코바, 혹시 몰라 챙겨온 신대홍 티슈를 가방에 넣은 뒤 평지부터 등산은 시작되었다. 바람은 찼지만 햇볕은 따스했으며, 왁자지껄한 등산객들의 웅성거림과 그 위로 들려오는 새소리는 마치 홀로 멀리 여행을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평지를 지나니 크지는 않지만 물소리가 시원한 계곡이 나왔고, 더 지나니 막막하게만 느껴지는 돌길과 오르막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오르막길을 힘들게 오르다보니 예전 추억이 떠올랐다. 사실 무등산 등산이 처음은 아니었다. 2010년 수능이 끝나고 폭설이 내렸던 어느 날, 중학교 친구들과 함께 아이젠 하나에 의지한 채 서석대까지 올라갔던 적이 있었다. 지금 그 친구들과 연락은 잘 되지 않지만 6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그 산을 혼자 오르고 있으니 과거의 내가 떠올라 왠지 모를 아련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중머리재(617m)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가져온 도시락을 먹으며 쉬고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님들, 등산복을 맞춰 입고 온 커플들,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정도면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찍히지 않을까 싶어 손을 한껏 들고 셔터를 눌렀지만 어중간한 사진만 남았다. 아쉬운 대로 챙겨왔던 초코바 하나를 먹고 물로 목을 좀 축인 뒤 장불재로 향했다.

여기는 장불재(919m)에 있는 넓은 공터이다. 여기서 보니 저 멀리 서석대와 입석대가 보인다. 아직 멀어보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장불재에서 입석대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좀 늦긴 했어도 어느 정도 단풍이 남아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추위 때문인지 단풍은 다 떨어지고 갈대들만 흔들리고 있었다. 장불재까지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렸기 때문에 체력이 떨어져서 초코바 하나를 더 먹고 다시 입석대로 향했다.

드디어 입석대에 도착했다. 해발 1000m 높이에 있는 주상절리라는 특이점을 가지고 있는 입석대는 자연가치도 높지만, 크기도 어마어마하게 커서 실제로 보면 ‘저 돌들이 산꼭대기에 어떻게 저런 모양으로 쌓여있는지 마냥 신기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서석대로 올라가보자.

오후 2시 21분, 입구에서 출발한지 2시간 56분 만에 서석대(1100m)에 도착했다. 왼쪽은 2016년 10월 30일에 찍은 사진, 오른쪽은 2010년 12월 어느 날에 찍은 사진이다. 맑은 날에 서석대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가슴을 탁 트이게 해주는 시원함을 가지고 있으며, 눈 덮인 날의 경치는 가슴을 떨리게 해주는 웅장함을 가지고 있다.

무등산 해발 1100m, 서석대에서 찍은 사진이다. 지칠 대로 지치고, 다리가 저려왔지만 정상에 다다랐다는 성취감과 산 정상의 맑은 공기에서 느껴지는 상쾌함에 기분은 날아갈 듯이 좋았다. 사실 서석대는 진짜 정상이 아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해발 1183m의 진짜 정상이 있는데, 그곳에는 공군 부대가 자리 잡고 있어서 1년에 하루 개방행사 때를 제외하고는 입장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먼발치에서나마 진짜 정상을 한참동안 바라본 뒤, 오후 2시 50분에 내려가기 시작해서 2시간 25분이 지난 오후 5시 15분에 입구 정류장에 발을 딛을 수 있었다.

산 아래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나오니 어느덧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등산이 끝난 뒤 멍하니 앉아 하루를 되짚어보니 어렸을 적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산을 올랐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왜 산을 타는 것이 힘들다고만 생각했을까. 타지생활 6년 차에 취업 준비까지 겹치게 되면서, 갈수록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부모님과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글의 시작 부분에서 등산 경로와 경치에만 치우치지 말고, 산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보라는 말을 던졌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 손을 잡고 산에 올라보지 않은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혼자 했던 등산은 나에게 과거 부모님과의 추억을 곱씹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시간이 있다면 근처 산에 혼자 오르며 이런 아련한 기억을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