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스토리

* 인형뽑기 매장에서 인형뽑기에 열중하는 사람들(왼쪽)

제대로 된 간판도 내걸지 않고 잡화 물품을 판매하는 가게(오른쪽)

그런데, 이러한 매장들을 둘러보면 ‘상호명’이 불분명하고 심지어 ‘전화번호’도 없어 제대로 된 매장이 맞는지 의문이 갑니다. 분명히 무언가를 판매하고 사람들이 이용하는 매장인데, 매장다운 구실을 갖추지 못한 곳입니다. 이런 매장들은 정체가 무엇일까요?

혹시 ’깔세’ 라는 용어를 들어보셨나요? ‘깔세’란 ”월세를 깔고 장사를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세입자가 한 점포를 임차할 때 특정 기간만큼의 월세를 건물주에게 한꺼번에 선지급하는 임대 형식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점포를 빌려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계약 기간을 확실하게 정하고 보증금을 납부한 다음 매월 월세를 꼬박꼬박 납부하는 게 ‘임대차 계약’ 규정인데요, ‘깔세’는 무보증금에 선월세 계약 방식입니다.

‘깔세’를 이용해 영업을 하는 업자들은 보증금 없이 매장을 빌리므로 임대료를 평소 시세보다 높게 납부합니다. 그래서 짧은 기간 안에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물건을 박리다매로 판매합니다. 그래서 주로 생필품이나 소액 결제를 할 수 있는 상품 등을 대량으로 구매한 후 장사를 시작합니다.

경기 불황이 심화되는 최근에는, 매장을 운영할 형편이 안 되는 업자들은 단기간 ‘치고 빠지기’식의 장사를 하는 깔세 매장을 선호하며, 그 수는 점점 증가하고 업종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의류, 화장품, 나노블럭, 수입과자 전문 깔세 매장

그렇다면 ‘깔세’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깔세의 장점>

-건물주, 원세입자 : 경기불황으로 매장 임차인을 구하기가 쉽지 않고, 장기간 ‘공실’로 놀려두는 것 보다 단기간 월세를 받을 수 있어 임대료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깔세 업자 : 큰 목돈이 들어가는 보증금, 권리금을 들이지 않고 소자본으로 부담 없이 장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또 영업 매출이 감소할 경우 신속하게 매장을 철수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 : 생활에 필요한 잡화물품들을 일반 매장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습니다.

<깔세의 단점>

-주변 상인 : 깔세 매장이 상가 주변에서 영업을 시작할 때 비슷한 업종으로 경쟁을 할 경우, 깔세 매장이 저렴한 가격으로 물품을 판매하므로 손님을 빼앗기게 됩니다. 또 ‘싸게 판다’라는 인식이 심어져 주변 상권의 가치가 떨어집니다.

-깔세 업자 : 깔세 매장은 부동산 ‘상가 임대차보호법’의 적용을 받지 못합니다. 애초에 건물주와 계약을 할 때 계약서 없이 영업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정식 계약이 없이 영업을 시작할 때 건물주가 ‘이중계약’을 하거나, 영업 기간 중 ‘계약해지’를 통보 받을 경우 아무런 힘 없이 쫓겨날 수 있습니다. 법적인 보장을 받지 못해 안정적인 영업을 하기 힘듭니다.

-소비자 : 깔세 매장에서 구매한 물품에 하자가 있는 경우 피해보상을 받기가 힘듭니다. 왜냐하면 깔세 매장은 주로 현금 결제를 통해 물품 거래를 하므로 거래 이력이 남지 않습니다. 또한 영업 특성상 단기간 치고 빠지는 형태라 뒤늦게 매장을 방문했을 때 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깔세’는 마냥 자영업에만 적용할 수 있는 용어가 아닙니다.

2 0대 대학생들에게도 ‘깔세’와 밀접한 예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원룸(자취방) 이어살기’ 입니다.

대 학생들이 원룸 입주계약을 할 때, 대개 ‘1년’단위로 계약을 합니다. 그리고 1년 12달 동안 학기 중은 물론이고 방학기간에도 월세를 납부합니다. 원룸 입주 학생 중에서 방학 기간에는 방을 비우고 고향으로 떠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시기 ‘이어살기’를 통해 ‘깔세’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방학 기간에 단기적으로 원룸 입주를 원하는 이들에게 2~3개월치 월세를 미리 받아 자신이 집을 비우는 동안 납부해야 할 월세를 아낄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또한 세입자는 보증금 없이 단기간 방을 빌릴 수 있어 목돈과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단순하게 ‘장사’라는 개념이 빠져있을 뿐, ‘깔세’라는 의미는 대학가 원룸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깔세’는 단순한 장사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어린 시절 소소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던 ‘인형 뽑기’ 같은 추억이 되거나,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이들에겐 저렴한 가격에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만, 누군가에겐 생계가 달린 중요한 사업입니다. 경기가 어려워질수록 쉽게 볼 수 있는 ‘깔세’의 풍경, 깊어가는 불황의 그림자입니다.